2010/10/31 09:47
학생들은 야생화가 아닙니다. 야생화야 사람들이 관심을 끊고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알아서 꽃까지 잘 피운다고는 하지만 우리학생들까지 보고있는다고 알아서 멀쩡한 사람으로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조금은 과도하다 싶을정도로 관심과 사랑을 주었을때 더 잘되는 경우가 있을 정도입니다.
어제 기사를 보니 서울시교육청에서 초중고등학교에서 약간의 체벌이라도 있었을 경우 이를 처벌하는것에 대한 지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체벌은 물론 육체적으로 가하는 물리적 행위를 뜻하는 단어겠지요. 국외에서 공부를 하고, 서구의 교육 이념을 믿으며 일관되게 육체적 체벌행위를 반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은 과연 그것이 우리 학생들을 대하는 하나뿐인 정답이 될 수 있을까요? 많이 변했습니다만은 우리집 아이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잘못한 아이를 꾸짓고 용서할수 있는 문화가 바로 우리의 긍정적인 문화입니다. 남의 아이들을 꾸짓는 행위에 대한 반감이 커져 길에서 잘못을 하는 하는 학생들을 보고도 모른척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사가 되었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교육적 지도행위에 대하여 그 권한이 암묵적으로 허용된 최소의 공간이 학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학교에서도 체벌이 금지 된다고 한다니, 이제 학생들은 어디서 누가 올바르게 끌어줄 수 있는 것인가요? 학생들이 제대로 자라나지 못하면 그들의 부모는 이를 학교 탓이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못된 친구탓이라 합니다. 자신의 아이들의 탓이라고는, 그리고 그것의 가장 큰 문제가 부모 본인들에게 있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대다수의 시간은 학교에서 그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가정입니다. 그리고 가정이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야 말로 부모의 가장 큰 잘못이되어버립니다. 우리 학생들을 대하는 가장큰 문제는 과도한 체벌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무관심입니다. 학교에서, 교실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교사에게... 어떤 의미로 보면 체벌은 이런 신호를 보내는 학생들에 대한 관심의 반응입니다.
우리의 학교와, 교실이라는 공간은 체벌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아닙니다.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체벌은 곧 교육이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체벌은 분명 교육의 일환일 수 있습니다.
과거 우리의 부모님의 부모님의 부모님의 부모님의 그 부모님까지도 회초리를 드셨습니다. 회초리란 한자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막대기란 뜻입니다. 그렇지만 회초리를 드는 교사와 부모, 그리고 회초리를 맞는 아이들도 회초리의 의미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일까요? 매를 든다는 것은 때리는 사람과 맞는 사람들 모두가 아픈일이어야 합니다. 어느 누군가가 아프지 않다면 그것이야 말로 교육적인 체벌이 아니라, 폭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분명 교육현장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저는 무조건덕인 체벌 금지에 대하여 반대합니다. 서울시는 체벌을 금지하고 문제학생들을 성찰교실이라 이름붙인 공간에 격리하는 것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답니다. 성찰교실에서 교사는 무엇을 합니까? 학생은 무엇을 할까요? 회초리로 때리지 않는 다른 형태의 체벌이나, 교실에서 그들을 격리하여 일정시간 가두어 두는 정도 이겠지요. 하지만 결국은 관심을 달라고 하던아이들에게 무관심으로 대응 하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 낼 뿐입니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인생을 실패하게 되는 절차를. 그것은 학교에서, 교실에서 말썽을 피울 때가 아닙니다. 모두가 포기하고 관심을 끊었을때, 그 학생이 학교에 흥미를 잃고 학업을 포기했을때 부터 정말 학생이 힘들어 지는 때라는 것을. 그리고는 학교는 속시원하다 느끼겠지요.
이제는 본격적으로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에게 무관심으로 대응하라 제도적으로 보장을 하자는 군요. 어려서 매를 맞아 뜨겁던 당신의 손바닥과 허벅지가 단지 아프기만 했다고 말을 합니까?
무엇이 교육인지부터 우리는 찾아야 할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 연후에는 정말로 나에게 맞는 회초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지요. 부디 바랍니다. 전면적인 체벌금지의 대안이 부디 무관심은 아니기를.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어제 기사를 보니 서울시교육청에서 초중고등학교에서 약간의 체벌이라도 있었을 경우 이를 처벌하는것에 대한 지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체벌은 물론 육체적으로 가하는 물리적 행위를 뜻하는 단어겠지요. 국외에서 공부를 하고, 서구의 교육 이념을 믿으며 일관되게 육체적 체벌행위를 반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은 과연 그것이 우리 학생들을 대하는 하나뿐인 정답이 될 수 있을까요? 많이 변했습니다만은 우리집 아이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잘못한 아이를 꾸짓고 용서할수 있는 문화가 바로 우리의 긍정적인 문화입니다. 남의 아이들을 꾸짓는 행위에 대한 반감이 커져 길에서 잘못을 하는 하는 학생들을 보고도 모른척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사가 되었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교육적 지도행위에 대하여 그 권한이 암묵적으로 허용된 최소의 공간이 학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학교에서도 체벌이 금지 된다고 한다니, 이제 학생들은 어디서 누가 올바르게 끌어줄 수 있는 것인가요? 학생들이 제대로 자라나지 못하면 그들의 부모는 이를 학교 탓이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못된 친구탓이라 합니다. 자신의 아이들의 탓이라고는, 그리고 그것의 가장 큰 문제가 부모 본인들에게 있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대다수의 시간은 학교에서 그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가정입니다. 그리고 가정이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야 말로 부모의 가장 큰 잘못이되어버립니다. 우리 학생들을 대하는 가장큰 문제는 과도한 체벌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무관심입니다. 학교에서, 교실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교사에게... 어떤 의미로 보면 체벌은 이런 신호를 보내는 학생들에 대한 관심의 반응입니다.
우리의 학교와, 교실이라는 공간은 체벌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아닙니다.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체벌은 곧 교육이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체벌은 분명 교육의 일환일 수 있습니다.
과거 우리의 부모님의 부모님의 부모님의 부모님의 그 부모님까지도 회초리를 드셨습니다. 회초리란 한자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막대기란 뜻입니다. 그렇지만 회초리를 드는 교사와 부모, 그리고 회초리를 맞는 아이들도 회초리의 의미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일까요? 매를 든다는 것은 때리는 사람과 맞는 사람들 모두가 아픈일이어야 합니다. 어느 누군가가 아프지 않다면 그것이야 말로 교육적인 체벌이 아니라, 폭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분명 교육현장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저는 무조건덕인 체벌 금지에 대하여 반대합니다. 서울시는 체벌을 금지하고 문제학생들을 성찰교실이라 이름붙인 공간에 격리하는 것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답니다. 성찰교실에서 교사는 무엇을 합니까? 학생은 무엇을 할까요? 회초리로 때리지 않는 다른 형태의 체벌이나, 교실에서 그들을 격리하여 일정시간 가두어 두는 정도 이겠지요. 하지만 결국은 관심을 달라고 하던아이들에게 무관심으로 대응 하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 낼 뿐입니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인생을 실패하게 되는 절차를. 그것은 학교에서, 교실에서 말썽을 피울 때가 아닙니다. 모두가 포기하고 관심을 끊었을때, 그 학생이 학교에 흥미를 잃고 학업을 포기했을때 부터 정말 학생이 힘들어 지는 때라는 것을. 그리고는 학교는 속시원하다 느끼겠지요.
이제는 본격적으로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에게 무관심으로 대응하라 제도적으로 보장을 하자는 군요. 어려서 매를 맞아 뜨겁던 당신의 손바닥과 허벅지가 단지 아프기만 했다고 말을 합니까?
무엇이 교육인지부터 우리는 찾아야 할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 연후에는 정말로 나에게 맞는 회초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지요. 부디 바랍니다. 전면적인 체벌금지의 대안이 부디 무관심은 아니기를.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